우리 모두가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될 텐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른이 되면서 인간의 이기심은 커지고 인종이나 피부색, 종교의 차이로 편을 가르고 원한과 분노를 만들어 내어 추악한 전쟁범죄를 일으키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왜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구라는 한 행성의 생명체로써 하나의 운명 공동체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망각하고 살고 있는 게 아닌가요? 어제 티브이에서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이 왜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너무나 끔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장단체가 엄청 많다고 하는데 왜 그런 단체가 늘어나고 왜 그런 단체에 젊은이들이 가입하고 목숨을 잃어가고 있는지 현실이 너무나 암담하기만 했습니다. 어떤 전문가분은 이스라엘이 확실한 보복의 응징을 하지 않게 되면 주변 아랍국가들에 대한 억지력이 약해져 하마스의 도발과 같은 이런 도발이 계속 이어져서 이스라엘의 평화가 깨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민간인의 희생이 불가피한 보복을 확실하게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현실인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또 다른 원한과 분노를 만들어 나 자신과 내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불씨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요? 그 상황을 보면 해법이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모두가 죽어야 끝나는 제로섬 게임처럼 느껴집니다. 화해의 길은 없는 것인가요? 모두가 어린아이같은 마음으로 돌아가는 바이러스가 세상에 뿌려져 모두가 행복한 바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환상을 품어 봅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06224741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벤자민 페렌츠의 101살 할아버지의 마지막 인사 탐구
아이들끼리는 언제나 서로를 이해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몸짓으로, 혹은 아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했지만, 결국 뜻은 통했다. 그것은 모든 아이들의 보편적인 특성이다. 아이들은 원래 친구들의 인종이나 피부색, 종교의 차이를 찾을 줄 모르고 그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누가 말해주지 않는 이상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웬만해서는 화를 낼 줄 모른다. 편을 가르거나, 아이들로서는 대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물질적인 것들을 얻는 것, 혹은 그런 기회를 갖는 것보다 연대감과 즐거움, 자유로움과 독립성이 이들에겐 더욱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어른인 우리가 지키려 애써야 하는 마음이다. (p. 27)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p. 147)
삶은 완벽할 수 없다. 게다가 참혹하거나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다면 늘 진정으로 행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그때 현재에서 만족할 만한 것들을 찾을 수 있다. (p. 139)
삶이란 굽이굽이 휘어진 좁은 오솔길들의 연속이다. 결코 곧게 뻗어 있지 않은. 그 길들은 빙글빙글 꼬여 있다가 오르막길이었다가, 곧장 아래로 곤두박질치다가, 온통 울퉁불퉁한 돌멩이들이 널려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다가 잠시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나게 되면, 그토록 지긋지긋했던 장애물들이 모두 가치 있는 경험들로 바뀔 것이다. (p. 72)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한 시대의 지혜
한 세기를 경험한 벤자민 페렌츠가 놀라운 삶을 통해 깨달은 것들
2021년은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가 종료된 지 75년 된 해였다. 매년 나치의 전당대회가 열렸던 뉘른베르크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쟁 범죄와 인류에 반하는 죄를 단죄했던 역사적 장소가 되었다. 총 열두 건의 재판이 진행되었고, 아홉 번째 재판은 나치의 학살부대였던 ‘아인자츠그루펜’ 부대원 스물두 명에 대한 기소가 진행되었다.
당시 스물일곱 살의 수석 검사였던 벤자민 페렌츠가 유대인들의 시신을 찾아내고, 증거 자료를 모아 진행된 재판이었다. 이후 그는 이스라엘과 서독 간 배상 협상에 참여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재산을 돌려주는 데 앞장섰으며, 이는 국제도덕의 역사적 이정표가 되었다. 뉘른베르크 법정 입구에는 “전쟁이 아닌 법(Law not war)”이라는 그의 슬로건이 적힌 흉상이 놓여 있다.
벤자민 페렌츠는 뉘른베르크의 교훈이 보다 인간적인 세상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그 희망에 평생을 바쳤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나아가 전쟁과 같은 힘의 지배가 공정한 법의 힘으로 바뀌도록 그가 쏟은 노력은 실로 대단하다. 누구보다 그 자신이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투에서 살아남았기에 전쟁이라는 것이 어떻게 무고한 사람들의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복수라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신념, 인종,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라도 법의 보호 아래 평화롭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따라왔고, 2002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국제형사재판소 ICC를 설립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는 등 현대사의 중요한 단계마다 최전선에 있었다. 그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끈기 있게 해 왔다.
그리고 모두가 불가능하리라 했던 많은 일들이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101살이 된 지금도 늙고 지쳤다고 뒤로 물러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죽을 시간조차 없다”는 그의 말은 농담이 아니라 너무나 진심인 말이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가디언〉지 기자였던 나디아 코마미가 벤자민 페렌츠와 나눈 대화를 정리해 펴낸 책이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주제들을 벤자민 페렌츠의 삶을 따라가며 아홉 개 키워드로 정리했다. 꿈부터 환경, 원칙, 사랑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소중히 해야 할 단순한 진리가 담긴 그의 이야기는 유쾌하고도 따뜻하다. 아무리 심각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찾아내는 그의 태도가 그렇고, 무엇보다 그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 끔찍한 공포를 목격했으면서도 희망을 믿는다.
그것이 지금껏 지치지 않고 변화를 모색해 올 수 있었던 힘이었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 일상의 크고 작은 변화들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너무나 조금씩, 느리게 이루어져서 그만 믿음을 놓아버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진보는 현실이다. 한 세기를 경험한 벤자민 페렌츠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바로 그 긴 시간이 알게 해 준 믿음이다.
목표가 의심스러워질 때, 꿈과 희망을 향해 고군분투하는데도 바다에서 제자리 헤엄을 치고 있는 것 같을 때 벤자민 페렌츠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용기와 희망 어쩌면 그의 삶은 이제 오래된 흑백영화에서나 볼 법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 트란실바니아에서 태어나, 미국 대공황 기간 동안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고, ‘헬스 키친’이라 불리는 뉴욕 맨해튼 우범 지구에서 범죄가 일상인 어린 시절을 보냈다.
책이라고는 읽어본 적 없는 부모 밑에서 자라 겨우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돈을 벌며 하버드 로스쿨에서 공부했다. 자라온 환경 덕분에 그는 일찌감치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150센티미터 남짓한 작은 키 때문에 몸집이 큰 사람들에게 괴롭힘도 많이 당했지만, 그를 두 번 괴롭힌 사람은 없었다. 그는 스스로를 지켜낼 줄 알았다. 눈앞의 역경들에 불평하는 대신 그것을 기회로 삼으며 나아갔다.
전쟁 범죄에 대한 전문가가 거의 없던 시절에 차곡차곡 공부하며 자신의 시간을 기다렸고, 뉘른베르크 재판과 국제형사재판소 설립 등 수많은 불가능에 도전했다. 그 과정에서 온갖 위험에 맞닥뜨렸지만, 겁을 먹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을 운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유머와 긍정의 태도로 살아왔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도 “키가 작아서 총알들이 머리 위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겁 없는 페렌츠”라고 불렀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희망과 꿈을 향해 고군분투하다 보면 바다에서 제자리 헤엄을 치고 있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자신의 꿈 앞에서, 도움을 줄 부모도 없고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는 벼랑 위에서, 혹은 동료들은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거나 그 일을 하는 데 장애가 많은 환경 앞에서, 하다못해 새 직장에 지원하거나 산을 오르거나 몸을 만드는 크고 작은 일들 앞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면, 벤자민 페렌츠의 삶이 용기와 힘을 줄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될 때, 믿음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 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줄 것이다. 한 세기 동안보다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한 길고 험난한 과정에서 그는 한 가지를 배웠다. 포기하지 않으면,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는 말한다. “포기하지 맙시다, 포기하지 맙시다, 절대,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코로나가 알려준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작은 행성을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우리는 뉘른베르크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을까?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전쟁 범죄부터, 서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난민들을 쫓아내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사람을 죽이거나 교육을 못 받게 하거나, 특정 집단을 증오하거나…
일상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그들 대對 우리’라는 접근 방식이 수많은 싸움과 전쟁을 낳고, 공정과 관용 같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가치와 이상 들은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 벤자민 페렌츠는 말한다. 우리가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야 한다고. 21세기에 20세기와 같은 사고방식과 가치관, 제도 들이 지속되도록 참아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그러나 좀 더 인간적인 세상을 위해 힘을 쏟기에는 내 삶만으로도 버거운 게 현실이다. 정의나 세계 평화 같은 말들은 이제 개인의 욕망과 각자의 생존 앞에서 너무나 멀고 큰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작은 행성을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벤자민 페렌츠가 알려준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가 알려준 것 또한 우리 모두가 어딘가에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듯이 말이다. 어떠한 역경에 처하더라도 인간 정신은 회복될 수 있다는 것, 출신이 어떻든 또 무슨 일을 하든 우리는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다는 것, 그렇게 연대할 때 우리는 더욱 강해진다는 것을 벤자민 페렌츠는 배우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점점 더 힘이 나는 기분이다. 여러분도 부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를. 우리는 틀림없이 더 열악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다.”
저 : 벤자민 페렌츠 (Benjamin Ferencz)
1920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 트란실바니아에서 태어났다. 갓난아기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맨해튼 우범 지구에서 범죄가 일상인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하버드 로스쿨에서 범죄학을 공부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역사상 가장 큰 살인 사건 재판으로 불리는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나치의 학살부대 아인자츠그루펜을 기소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가 ‘법에 인간성을 호소’하며 법의 역사를 새로 썼을 때,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자 첫 재판이었다. 이후 이스라엘과 서독 간 배상 협상에 참여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재산을 돌려주는 데 앞장섰으며,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뉘른베르크 법정 입구에는 ‘전쟁이 아닌 법(Law not war)’이라는 슬로건이 적힌 그의 흉상이 있다.
2018년 배리 애브리치 감독이 〈악마를 기소하다 Prosecuting Evil〉라는 다큐멘터리로, 법의 보호 아래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삶을 담아냈다. 2019년 평생의 동반자였던 아내를 떠나보내고, 2020년 3월에 백 살이 되었다. 플로리다에서 국제법과 세계 평화를 위해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며 지낸다.
역 : 조연주
대학과 대학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편집자로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어왔고, 몇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옮긴 책으로 소설 《아쿠아리움》, 어린이책 《색깔의 여왕》 《아저씨, 왜 집에서 안 자요?》 《난민 이야기》 《플라스틱 얼마나 위험할까?》가 있다.
책 속으로
젊은이들에게 세 가지만 충고해 달라고 부탁하자, 벤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주 간단한 것들이라네. 첫째, 절대 포기하지 말 것. 둘째, 절대 포기하지 말 것. 셋째, 절대 포기하지 말 것.” 나는 이 가르침을 언제나 가슴속에 품고 있다. ---「서문(나디아 코마미)」중에서
나는 온갖 위험에 맞닥뜨렸지만, 겁을 먹었던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나를 ‘겁 없는 페렌츠’라고 불렀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나는 나 자신을 지켜내는 법을 배웠다. 누군가 위협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그의 급소를 걷어찬 뒤 쓰러진 그의 머리를 다시 무릎으로 차올려줬을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괴롭힘에 익숙했지만, 나를 두 번 괴롭힌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누구라도 우리를 두 번씩이나 괴롭히게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삶에 대하여」중에서
보통 사람들이라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두려움 속에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은 얼마든지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훌륭한 일 역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놓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다시 힘을 낼 수 있고,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이 역사를 좀 더 괜찮은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다. ---「원칙에 대하여」중에서
지금까지 사는 동안 나는 그전에는 불가능했던 많은 것들이 결실을 맺는 것을 보아왔기에, 또 다른 불가능을 위해 애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직접 보는 것들은 믿을 수가 있다. 내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끈기에 대하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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