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로 읽고 좋아하는 책들 대부분은 고전 중에서도 현시대에 끼워 맞춰 지금의 시각으로 봤을 때도 훌륭하다고 평가할 만한 것들로 발췌된 격언이나 명언집들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거부감을 주는 인종차별적이거나 성차별적인 부분들은 애써 외면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고전을 읽다 보면 현시대에서 볼 때는 불편한 감정을 불러오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불편한 감정 또한 같이 느끼며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충고합니다. 그 불편한 감정들로 인해 고전을 멀리하는 것은 그야말로 구더기 무서워 장을 안 담그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불편한 감정도 애써 외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전을 읽는 것은 그것 또한 함께 읽으며 불편한 감정을 느껴야지만 진정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빛과 그림자를 함께 봐야지만 고전을 통해 우리는 진리를 얻을 수 있고 세상을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얼마 전 우리 정부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옮기는 일을 가지고 역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시각으로 끼워 맞추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전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고전 속의 인물들에 대한 해석이 지금 현재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고전속의 인물들은 그 당시 시대의 시각으로 봐야지만 우리는 오롯이 그 세계로 들어가 진정한 고전의 가치를 향유할 수 있습니다. 그 현시대상황 속에서 느꼈을 인물들의 고뇌와 슬픔 그리고 분노를 우리가 함께 느끼며 인생의 진실된 가치와 의미를 우리의 현실에서 찾아나가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07680514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앨런 제이콥스의 고전을 만나는 시간 탐구
<일리아드>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산 사람을 사물로 뒤바꿔놓는 무시무시한 변환의 과정이다. - p74,
「고전을 만나는 시간」 고전을 만나는 시간
오래된 책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다 Breaking Bread with The Dead
앨런 제이콥스 지음
미래의 창
「고전을 만나는 시간」 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부터 이디스 워튼의 「기쁨의 집」,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등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50여 권의 책들이 빼곡하게 담겨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저자, 영국의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미국의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 등 본문과 관련된 철학가나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이쯤 되면 저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저자인 앨런 제이콥스(Alan Jacobs)는 미국 베일러대학교 아너스 프로그램(Honors Program; 최상위권 학생 교육 프로그램)의 석좌교수이자, 영문학자, 작가다. 앨라배마대학교를 졸업하고 버지니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4년부터 2013년까지 휘튼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그는 이 책 「고전을 만나는 시간」을 통해 그동안 학생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썼던 '고전을 읽는 것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이번에는 스승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독자로서 다른 독자들에게. 과거의 모든 작품들이 다 고전인 것은 아니지만, 고전의 범주에 들지 않는 오래된 책을 읽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저자는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고전에 관한 에세이의 내용을 인용하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사람들이 오래된 책을 읽을 때 경험하게 되는 '친밀감'을 강조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 그는 "고전을 읽을 때 우리는 가금 우리가 항상 알아온( 또는 안다고 생각해 온 ) 무언가와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그 작가가 그 말을 제일 먼저 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는 것이다. 이건 커다란 기쁨을 선사해 주는 놀라운 경험으로, 기원과 관계, 관련성 등을 발견할 때마다 이런 종류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 - p118
이탈로 칼비노가 말한 그 기쁨은 나도 종종 느낀다. 이를테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읽다가 체코의 소설가 카렐 차페크가 '로봇'이란 단어를 처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소소한 기쁨 같은 것을 떠올린다. 이어서 개인에게 다가가는 '당신만의(your) 고전'의 개념도 인용한다.
'당신만의 고전 작가란 당신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고, 그와의 관계에서 당신 자신을 정의하거나, 심지어는 그와 논쟁을 벌이도록 당신을 자극해 주는 그런 작가들을 말한다.'라고 말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만의 고전'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책이 당신 스스로 생각해보지 못한 것은 물론, 믿고 싶지도 않은 무언가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면, 그 책이 당신에게는 고전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주장에 크게 공감하며 밑줄을 그어보게도 된다.
책은 하나의 주제나 개념이 소개되고, 그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왕창 쏟아지는 구성이다. 저자 스스로도 밝혔듯이 체계적이기보다는 '나선을 그리며 상승하는 형태를 모방' 하려고 애쓴 흔적들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인용은 '차이 없는 과거'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장의 키워드는 '배움 | 과거로부터의 교훈'이다. 고전은 지금 이 순간의 관심사를 배경 소음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배경 소음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런 것들이다. - p120
주제에 대해 운을 떼고, 다양한 고전들과 독자의 사례를 통해 이어지는 이야기들 및 저자의 주장은 매우 공감 가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내가 읽는 그 책이 어떤 식으로든 내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독서에 필수적인 맥락을 제공해 준다. '. 아. 정말 그렇다! 이어 '죽은 이들과의 식사는 완수해야 할 학문적 과제가 아닌, 굶주린 모든 사람들이 초대받는 영원한 만찬이 되어야 한다. (p130)'라고 해당 장을 맺는데, 만찬, 식탁에 대한 비유는 앞장에서부터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최근 고전문학을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이디스 워튼의 책도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중이었는데, 책 속에서는 이디스 워튼의 「기쁨의 집(The House of Mirth)」에 담긴 노골적 반유대주의 성향 때문에 책을 거부한 학생의 사례가 나온다. 작가에게서 자민족중심주의나 성차별주의, 인종주의 등을 발견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시간여행을 하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들이다.
'오래된 소설을 집어 들 때 우리는 그 소설가를 우리 세계로 데려오면서 그 사람이 이 세계에 속할 만큼 개화된 사람인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소설가의 세계로 여행을 가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p63)'이라는 것. '작가는 우리의 식탁을 찾는 손님이 아니라 우리가 작가의 식탁을 찾는 손님이다.'는 문장은 고전에 대해 독자로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단언컨대, 과거의 목소리(생각)에 놀라거나 심지어는 기분 나빠할 능력을 잃는다면, 진짜 핵심적인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 문헌은 나를 불쾌하게 하니 더 이상 읽지 않겠어"라고 말하는 건 근시안적 태도일지 모르지만, 잘못된 점이나 자기 의견과의 차이점조차 못 보게 될 정도로 과거의 '위대한 책'에 대해 경외심을 품는다면, 그것도 해롭기는 마찬가지다. -p118
「제인 에어」를 새롭게 재해석한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다른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슐러 르 권의 「라비니아」에 대한 글(p137) 또한 개인적인 호기심을 폭발하게 했다. 각기 다른 시대에 쓰인 작품들을 비교하며 서로 다른 해석, 가치관 등을 풀어내는 글에 해당 책들이 궁금해질 수밖에.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도 펼쳐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어슐러 르 귄의 「라비니아」 도 책 장바구니에 쏙. 20대에 가장 인상 깊은 책을 이야기하라고 할 때 나는 「데미안」과 「작은 아씨들」을 들곤 했다. 그리고 내가 「작은 아씨들」 을 선택했었던 이유를 다른 독자의 사례에서 만났다. 잊고 있던 기억들도 떠오르며 지금의 내 모습이 그때 읽었던 책들의 영향도 있었음을 깨닫는다.
도로시 오즈번과 같은 과거의 실존 인물들과 조우하거나 <인형의 집>의 노라 헬메르나 <작은 아씨들>의 조 마치 같은 허구의 인물들과 마주칠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들과 자신의 가치, 가정, 희망, 두려움 등에 관해 이야기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갑작스럽게 그들과 우리 사이의 불협화음을 인지하게 되더라도 그 불협화음으로부터 달아나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 속으로 곧장 뛰어들어야 한다. 선조들의 태도와 자신의 태도를 비교하는 이 과업은 매우 흥미로운 과정이 될 수 있다.
(...) 레슬리 제이미슨이 말했듯이 양자 사이의 긴장은 타닥거리면서 불꽃을 튀기고, 이 불꽃은 빛과 온기 모두를 생성해 낸다. -p218, 인형의 집에서 내다본 풍경 / 비교 |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타닥거림 저자는 맺는말에서 '정보의 밀도가 높은 환경이 인격의 밀도가 낮은 개인들을 양산해 낸다(p236)'라고 말한다.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무한한 선택을 제공하는 듯 보이는 세상이 실제로는 선택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놓는데, 이는 정보 환경이 우리를 대신해서 선택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풍부하게 하고 스스로를 더 강건하게 만들기 위해서 죽은 이들에게 관심이란 피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9장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그렇게 획득한 강건함을 활용해 미래와 의미 있는 약속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 우리가 옛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 그들은 우리가 극복한 편협함과 사악함의 본보기로서가 아닌 이웃으로서, 심지어는 스승으로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조차 그런 상황이라면 우리도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단순한 관심을 넘어선 사랑을, 후손들에게 바라는 것과 같은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랑을 보내줄 수 있을 것이다. 인격의 밀도를 향상해야 한다는 이 책의 주장은 먼 과거에서 먼 미래로 이어지는 생명의 사슬에서 고리로서 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 앨런 제이콥스
'인격의 밀도를 향상'하기 위해 고전을 읽는 것은 다른 시간대, 다른 세계라는 시. 공간상의 차이와 거리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자신의 시대만 아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앨런 제이콥스는 오래된 책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자고 권유한다.
이렇게 '과거를 향해 자신을 열어젖힐 때 우리는 마음에 안 드는 옷을 입은 젊은 여성에게 분노에 찬 트위터 메시지를 보내거나, 반감이 가는 트위터 문구를 보고 경솔하게 직원을 해고하거나, 환경 변화에 비생산적인 분노나 전적인 무관심으로 반응하는 우행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며 순간의 충동들, 결코 고요한 마음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그 충동들에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전한다. 고전을 읽을 이유가 현실의 적나라한 모습에서 이해되는 순간이다.--독자리뷰
길을 잃은 현대인들을 위한 불편한 고전 읽기
‘인종차별’, ‘성차별’, ‘불평등’ … 문명이 발달하고 의식이 성장했지만, 차별의 역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며 이념과 사상의 대립이 더 극심해지면서 차별은 더 깊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남녀평등의 외침은 오히려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의 색을 더 짙어지게 만들었고,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는 등 서로의 갈등만 키우는 꼴이 되었다.
이 책은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이러한 문제들이 과거에도 존재했으며, 과거에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해 갔는지를 고전 작품들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보편적 진리를 이야기하며 과거의 교훈에만 중점을 두는 다른 여타의 책들과 달리 과거와 현재, 둘 사이의 차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19세기말 발표된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과 페미니즘 시각에서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함께 다루는 식이다. 지금까지도 평단의 찬사와 함께 널리 읽히고 있는 이디스 워튼의 『기쁨의 집』을 현대 인종차별의 원형이었던 반유대주의 색채가 짙다고 여기는 현대 독자의 시각으로 보거나 최고의 고전 중 하나로 꼽히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 주목받지 못한 다른 등장인물의 시각으로 이를 재해석한 어슐러 르 권의 『라비니아』를 통해 그 차이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고전은 현대와는 다른 해석과 가치관 등을 보여줌으로써 과거의 선택에 비추어 현시대의 선택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삶의 지혜를 탐구하는 당신에게 보내는 초대장 “마라톤 평원(아테네군이 페르시아 대군을 격파한 곳)에서 애국심이 고양되는 걸 느끼지 않거나 이오나(스코틀랜드 기독교가 태어난 곳으로 존경받는 순례의 장소)의 폐허 한가운데서 신앙심을 자극받지 않는 그런 사람은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시인 새뮤얼 존슨의 말에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헤로도토스(『페르시아 전쟁사』의 저자)와 베다 베네라빌리스(『앵글인의 교회사』의 저자)의 저작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마라톤 평원과 이오나 폐허에 대해 무엇을 알았겠는가?” (240~241쪽) 인문학 교수인 저자는 학생들에게 고전을 가르치는 동안 그 고전들이 현시대와도 연관되어 배울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의 독자들이 ‘오래된 책’, 즉 고전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에 관해 이 책 전반에 걸쳐 이야기한다.
그는 과거를 연구하는 가치에 대해 자본주의의 실상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린 토머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에 나오는 ‘인격의 밀도’를 내세워 설명한다. 현대인들은 SNS에 떠도는 아주 가벼운 이슈에조차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인격의 밀도가 결여되어 있는데, 생각을 현재의 순간에만 가두면 그만큼 인격의 밀도가 낮아져 빠르게 변화하는 현시대에 사람들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점점 더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과거의 낯설고 훌륭한 글과 말은 우리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조차 못 했던 것들을 이야기해 줌으로써 우리의 생각의 범위를 넓히고 인격의 밀도를 높여준다. 따라서 과거의 글과 말을 받아들이는 건 현시대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문학이 전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자 지금까지 가장 많이 읽힌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부터 18세기에 가장 인기를 끈 소설 중 하나인 장 자크 루소의 『신엘로이즈』, 19세기에 엄청난 논란을 일으킨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고전을 재해석한 20세기 걸작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기후 변화를 소홀하게 취급하는 현대 소설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한 21세기 작품 아미타브 고시의 『대혼란의 시대』까지 시대와 문화를 넘나들며 현대의 독자들을 고전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 지적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고전이 전하는 오늘을 사는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 : 앨런 제이콥스 (Alan Jacobs)
영문학자이자 작가인 그는 미국 베일러대학교 아너스 프로그램(Honors Program)(최상위권 학생 교육 프로그램)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는 특훈교수(Distinguished Professor)다. 앨라배마대학교를 졸업하고 버지니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4년부터 2013년까지 휘튼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현재까지 15권의 책을 출간했고, [디 애틀랜틱(The Atlantic)], [하퍼스 매거진(Harper's Magazine)], [크리스천 센추리(The Christian Century)], [뉴요커(The New Yorker)],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역 : 김성환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바른 번역 아카데미 출판번역 과정을 수료했다. 동서양 고전과 심리학, 불교 등을 깊이 있게 공부하면서 관련된 분야의 책들을 번역하고 있다. 틈날 때마다 ‘알아차림’의 태도를 취하는 명상 애호가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 《감정들-자기 관찰을 통한 내면 읽기》가 있고, 옮긴 책으로 《쓰지 않은 마음》 《진료실에서 만난 붓다》 《모나리자를 사랑한 프로이트》 《자비심 일깨우기》 《무의식이란 무엇인가》 《고전을 만나는 시간》 《마음의 요가》 등이 있다.
책 속으로
호라티우스는 자기 자신과 현재의 우리에게도 ‘현자(아마도 그가 아테네 학당에 있을 때 공부한 그런 부류의 사상가들)의 저술들을 읽어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진짜 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이유도 있는데, 그건 그들이 우리와 생활양식 자체가 다른 완전히 낯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를 일상의 끝없는 순환으로부터, 돈과 사소한 것들에 관한 강박적 집착으로부터 끄집어내 준다.
그 집착은 우리를 괴롭히고, 학대하며, 불안하게 교차하는 희망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며, 생각에서 생각으로, 감정에서 감정으로 뛰어다니도록 우리 자신을 내모는 그런 집착이다. 그토록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도 이런 유형의 불안감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건, 비록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강도가 훨씬 심하다 하더라도 큰 도움이 된다. --- p.19
“그 이야기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자신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난과 참사들을 자각하고 거기에 반응을 보이는 방식은 실로 놀라웠습니다. 비록 작품 속 이야기가 실제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을지라도 그것은 현재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환경 변화에 대처하는 법을 배운 건, 그의 동시대인들이 아니라 선조들에게서였다. --- p.24
이 두 요인은 앞서 언급한 트리아쥬 작업을 끊임없이 수행하도록 인간을 압박함으로써, 즉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고 무엇에 대해 생각할지 판단을 내리도록 함으로써 인간을 점점 더 위압적이고 독단적인 사람으로 만들어간다. 이건 소셜 미디어 이용자들이 소위 ‘물을 흐리는’ 사람들을 커뮤니티 밖으로 쫓아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야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사람들을 현재 순간에 옭아매게 한다. 이렇게 되면 ‘지금(no) w’ 이외의 것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없어지고, ‘지금이 아닌 것(not-no) w’은 점점 더 달갑지 않게 되며, 심지어는 더러운 짐과 같다고 여기게 된다. --- p.34
하르트무트 로자는 사회적 가속화와 연관된 최근의 이런 경험들(시간의 대역폭이 좁아졌다는 느낌과 상황적 처세 유형을 선택하도록 내몰리는 듯한 느낌)과 불안 및 우울증 사이에 긴밀한 연관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사실 ‘정신없이 바쁜 멈춤’의 상태에 있다는 것은 우울한 사람들에게서 아주 흔하게 발견되는 특성이다. 오래된 책을 읽는 게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까지 말하진 않겠지만 고전 읽기를 통해 두터워진 인격의 밀도는 우울증이라는 파도 앞에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고, 감정의 폭풍이 휘몰아칠 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항구가 되어줄 수 있다. --- p.43
이 책의 제목(원제: Breaking Bread with The Dead)을 시인 위스턴 휴 오든(W. H. Auden)이 애정하는 구절인 “예술은 우리가 죽은 자들과 함께 식사하는 주된 수단이다”라는 말에서 가져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함께 식사하기(breaking bread)’, 즉 선조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그들과 우리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가는 과정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 p.51
시중에는 과거를 연구하는 것의 가치를 옹호하는 책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그 책들은 진정으로 유용하고 흥미로운 과거의 산물들이 현재 우리의 것과 놀랄 정도로 닮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만 중점을 둔다. --- p.54~55
오래된 책인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다름에 대해 숙고하는 법을 배우는 일종의 교육이다. 그리고 이 교육의 목적은 다른 사람과 나를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어떤 의미에서는 내 이웃으로 만드는 것이다. --- p.65
“현재와 단절된 과거는 우리의 열망에 아무런 자양분도 공급해주지 못한다.” --- p.73
지난 수년 동안 우리는 오래된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고전 문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그들의 현대적 가정들을 잠시 덮어두라고 권유하는 말과 글을 많이 접해왔다. 하지만 이런 충고는 옳지 않다. --- p.77~78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의 탁월하고 독창적인 회고록인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를 보면, 저자가 카리브해 지역의 럼주 증류업자를 만난 이야기가 나온다. 마르티니크에 갔을 때, 그는 “18세기부터 전해져 내려온 도구와 제조법을 사용하는 소박하고 허름한 럼주 증류업자를 만난 적 있다”라고 말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푸에르토리코에서 만난 럼주 증류업자는 흰색 에나멜 탱크와 크롬 파이프로 된 철저히 현대적인 도구를 갖추고 있었다. 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찌꺼기로 뒤덮인 오래된 나무통 앞에서 맛본 다양한 종류의 마르티니크 산 럼주들은 맛이 그윽하고 향기로웠지만, 푸에르토리코에서 맛본 럼주들은 하나같이 거칠고 독하기만 했다.” --- p.95
플루타르크는 사람들이 어디에서든 현명하고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고대의 위인들과 연결해 주는 책들 덕분이라고 했다. --- p.107
나는 현대인들이 때로는 오래된 책의 부족한 점들에만 집중해서 그 책이 제공하는 가치를 완전히 외면하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해 왔다. 부정적 선택으로 기우는 현대인들의 성향으로 인해 고전의 긍정적 선택의 혜택에는 완전히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다. --- p.115~116
내가 고전으로 여기는 작품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바로 그런 종류의 반대 의견을 제시해 주는 작품들이다. 그런 작품들을 읽을 때, 책과 나누는 대화는 내 의식의 전면부로 불쑥 솟아오른다. 칼비노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매우 예리하고 섬세한 말을 남겼다. “고전은 지금 이 순간의 관심사를 배경 소음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배경 소음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런 것들이다.” --- p.119~120
스승들에게 올드먼처럼 평가하고, 거리를 두고, 분석하는 법을 배웠다면, 좋아하는 작가들에게는 젊은 하우스먼처럼 열정적인 태도로 교감을 추구하는 법을 배웠다. 두 교훈 모두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지만, 내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건 작가들이었고, 이 책에 쏟아 넣은 것도 주로 그들에게 배운 교훈이다. --- p.130
리스와 르 귄이 고전 작품들에 강력하고 감동적인 방식으로 반응함으로써, 그 책들에 대한 우리의 경험까지 풍부하게 해 줄 수 있었던 건, 그들이 그 책들을 향해 너그러움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순히 비판을 가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이상적 순간’과 인간성의 ‘진짜 알맹이’까지 함께 추구했다. --- p.141
격언의 형태로 전해지는 고대의 지혜가 정말로 인간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준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의 본성은 바뀌지 않지만, 인간의 환경은 변하는 것이라면, 비록 습자책 표제가 말하는 것들이 흠결 없이 완전하다 하더라도, 그 구절들을 현재 우리가 당면한 도전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터득해야 한다. --- p.145
이 두 남성의 경험은 독서의 엄청난 영향력을 입증해 준다. 그리고 그 영향력이 공통점(말하는 사람이 처한 상황이 나와 같다는 느낌)으로부터 비롯되기도 하지만 차이점(말하는 사람의 상황이 나와 다르다는 느낌)으로부터 비롯되기도 한다는 점 또한 보여준다. 정신적, 도덕적 건강을 위해 우리는 이 둘 다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주의는 전자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후자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 p.159
이건 콘래드에게 놀라운 경험이었다. 에픽테토스가 지구 반대편에서 2천 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그에게 직접 말을 걸어온 것이다. 게다가 콘래드는 에픽테토스의 글들 속에 또 다른 무언가가, 더 위대한 무언가가 담겨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그의 작품 속에 들어 있는 건 삶의 철학 전체, 즉 어떤 순간에서든지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줄 믿을 만한 하나의 지침이었다. --- p.167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오래된 책과 저자들을 익숙하고 편안한 카테고리(‘영감 어린 구절들’, ‘명상이나 마음 챙김 같은 종교적 훈련들’) 속에다 끼워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런 태도는 이미 알고 있는 것 너머로 우리를 데려다 줄 낯선 글과 말을 읽고 듣는 걸 불가능하게 만든다. --- p.177
과거를 면밀히 조사하고, 평가하고, 돌이켜보며 다시 숙고하는 그의 태도는 과거와 관계 맺는 법을 보여주는 하나의 훌륭한 모범이다. 과거를 이상화(idealization)하거나 악마화(demonization)하는 건 쉬운 일이며, 특히 사회적 가속화 시대에는 엄청나게 유혹적인 일이다. --- p.187~188
2017년 미국의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Lucas Hnath)가 쓴 〈인형의 집, 두 번째 이야기〉라는 제목의 연극이 브로드웨이 무대 위에 올랐다. 이 작품은 노라가 남편에게 휘둘리며 살았던 ‘인형의 집’ 밖으로 뛰쳐나온 뒤 15년 후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노라는 자신이 오래전 남편과 아이들을 떠났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한다.
이에 대해 테리 티치아웃은 이렇게 말했다. “당연하다. 당신은 2017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작품에서 ‘노라는 그녀의 좌절감을 집어삼키고 집에 남아 아이들을 길렀어야 했다’라는 식의 내용이 담겨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 p.204
도로시 오즈번과 같은 과거의 실존 인물들과 조우하거나 『인형의 집』의 노라 헬메르나 『작은 아씨들』의 조 마치 같은 허구의 인물들과 마주칠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들과 자신의 가치, 가정, 희망, 두려움 등에 관해 이야기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갑작스럽게 그들과 우리 사이의 불협화음을 인지하게 되더라도 그 불협화음으로부터 달아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 속으로 곧장 뛰어들어야 한다. 선조들의 태도와 자신의 태도를 비교하는 이 과업은 매우 흥미로운 과정이 될 수 있다. --- p.218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간의 역사에서 자신의 시대만 아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그들 자신과 그들의 문화 전체는 그들의 무지로 인해 더 나쁜 것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얄팍한 순간만을 살며 자신이 살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는 알려하지도, 알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 p.224~225
무한한 선택을 제공하는 듯 보이는 세상이 실제로는 선택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놓는데, 이는 정보 환경이 우리를 대신해서 선택하기 때문이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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