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보았던 영화 아바타를 아실 겁니다. 몸은 현세상에 있는데 정신은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가서 다른 존재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 비슷한 영화가 그 이후로 계속 나왔던 거 같습니다. 매트릭스도 몸은 기계 안에서 발전기 역할을 하고 있고 정신은 컴퓨터의 게임 속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도 어떨 때 보면 그 가상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하는 온라인게임을 보면 거의 가상의 삶과 비슷합니다. 현실에서 느끼지 못하는 불만족과 기쁨을 가상의 게임 속에서 채우려 합니다. 게임 속 세상이 아니더라도 우리 몸이 있는 지금의 현실도 그러한 게 아닌가요? 거대한 게임 속 세상의 한 캐릭터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한 세상의 게임의 규칙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얽매여 있습니다. 몸은 여기서 벗어나면 죽게 되겠죠. 정신은 어떤가요? 정신 또한 이 세상이 만든 규칙에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맞는 건가요? 컴퓨터 상에서 만드는 캐릭터처럼 세상이 만드는 조작된 정신으로 사는 것은 아닌가요?
모든 사람들이 세상이 만들어낸 환상을 쫒아서 자신이 조작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최면에 걸린 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어쩌면 그 환상을 깨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주입시킨 헛된 망상에서 깨어 나라고요. 우리가 쫒고 있는 성공, 꿈같은 것들이 사실은 스스로 원한게 아닐지도 모른다고요.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9182172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미나미 지카사이의 그럼에도 왜 사느냐 묻는다면 탐구
“'나’라는 존재는 누구인가?” 고통에 부러지지 않고 유연하게 살아가기
오늘날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에 도취된 ‘비대’해진 자아를 주입받는다. 노력만으로 뭐든 이룰 수 있다는 성공의 레퍼토리가 개인의 조건과 환경, 그리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까지 덮어버린다. 우리가 힘든 건 그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고, 절실하지 않았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의 수사학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효과적인 기술이다.
이 책은 ‘자기 계발의 망령’을 걷어내고 인간과 삶의 본질을 들여다본다. 저자는 인간의 탄생 자체가 수동적이며 우연히 얻은 생이라고 강조한다. 인간은 성별, 지역, 인종 어떤 것도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어쩌다 태어난 인간의 최대 욕구는 자신을 인정해 주는 존재, 즉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것. 하지만 자기 ‘삶의 테마’가 분명한 사람은 타인의 인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삶의 테마를 찾기 위해서는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바로 ‘교양’이다. 교양은 어떻게 쌓을 수 있을까?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깊이 몰두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아 지식을 쌓으며 실천하는 과정에서 지혜가 움터 교양과 가치관이 자란다. 단단한 세계관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세계관이 올바르게 서 있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다만 직장이든, 관계에서든 힘이 들 때는 조금만 자세를 바꿔보자. 당장 눈앞에 있는 것에 매몰되면 여유가 없어지고,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된다. 지금 있는 곳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잊지 말자. 모두 ‘임시 거처’ 일뿐이다. 지금 있는 곳에서 꽃 피우지 않아도 괜찮다.
“감정을 관리해야 인생이 관리된다” 감정의 파도에서 내려오는 기술
우리는 때때로 시간, 지위와 돈, 인정과 칭찬, 특정 상황에 집착한다. 늘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알고 보면 정말로 뭔가 필요한 게 아니다. 무언가를 갈구하는 마음 깊숙이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대체 무엇에 불안을 느끼는가. 어떤 상황이 나를 불안에 떨게 하는가. 자기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며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 안에 있는 무언가가 판단을 흐릴 때 우리는 감정의 파도에 휩쓸린다.” 감정의 파도에 크게 휩쓸리지 않는 방법은 감정과 생각을 잠시 차단하고 몸을 움직여 오감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다. 산책, 감명 깊게 읽었던 책 다시 읽기, 찬찬히 음미하며 차 마시기, 물의 감촉에 집중하며 샤워하기 등 몸의 감각을 느끼는 게 좋은 방법이다.
주의할 점은 물리적으로 혼자일 것, 두 번째는 몸을 크게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 평소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작은 일들을 익혀두자. 불교에서는 괴로움을 낳고 깨달음을 방해하는 세 가지 번뇌로 ‘탐욕, 분노, 어리석음’을 꼽는다.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내가 옳다는 믿음 때문인데, ‘옳은 것’은 늘 변화하기 마련이다. 이 사실을 늘 마음에 품고 있으면 잠시 욱할지언정 불필요한 분노는 흘려버리게 된다.
분노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이 질투다. 질투는 자신의 것을 부당하게 빼앗겼다는 소유욕에서 비롯된다. 질투를 느낄 때 그 상황이 정말 부당한지 따져보자. 냉정히 생각하면 자신의 착각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의미로 알려진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은 사실 좋은 날과 나쁜 날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매일이 포일(好日)이니, 인생에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는 것. 언젠가 죽음을 앞에 두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었지만 어쨌든 살아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런 죽음을 맞으려면 ‘소중한 나’에서 벗어나 타인에게 자신을 열어 보이고, 손익 계산을 하지 않고 인연을 맺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어차피 우리는 아무것도 없이, 우연히 세상에 왔으니까.
"많은 사람이 자기에게 득이 되는 길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경쟁에 치여 기진맥진한다. 경쟁에서 이겨야 이득이라는 생각 때문에 늘 바쁘고, 능력 있고 멋지게 살아야 한다는 착각에 빠져서 날로 피폐해진다. 이런 사람에게는 일찍이 어둠이 깃든다. 그런데 인생에 죽고 사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는 없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흥정과 경쟁은 그저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하나의 속성일 뿐이다."
저 : 미나미 지키사이 (Jikisai Minami, みなみじきさい, 南 直哉)
1958년 나가노현에서 태어났다. 와세다 대학 문학부(미술사학 전공)를 졸업한 후 대형 백화점에서 근무했다. 1984년 조동종에 출가하여 후쿠이현의 대본산 에헤지(永平寺)에서 2003년까지 약 20년간 수행 생활을 했다. 2005년 아오모리현 오소레산 보다이지(菩提寺)의 주지 대리가 되었으며, 현재 후쿠이현 레이 센지(?泉寺)의 주지이다. TV 출연, 강연, 저술, 블로그 등으로 속세와 소통하고 있다. 저서로 『말하는 선승』, 『일상생활 속의 선』, 『‘물음’에서 시작되는 불교』, 『노스승과 소년』 등이 있다.
역 : 백운숙
경희대학교를 졸업했다. 수능 공부가 싫어서 외국 소설책에 한눈을 팔았는데, 번역가가 세상에서 제일 멋져 보였다. 대학교에서 한국어학과 일본어학을 전공하면서 도쿄에서 유학생활을 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일본계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지금은 바른 번역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며 좋은 책을 소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독자에게 기쁨을 줄 책이 탄생하는 데 손을 보태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도 행복하다.
《말투 때문에 말투 덕분에》, 《밤을 새워 준비해 혼을 다해 말했더니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고 들었다…》, 《어려운 질문 애매한 질문 중요한 질문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까》, 《짧은 글을 씁니다》, 《직장 생활 힘 빼기의 기술》, 《물건을 절대 바닥에 두지 않는다》 외 여러 책을 한국어로 옮겼다.
책 속으로
평소 ‘나’라고 일컬어지는 건 그저 ‘기억’과 ‘타인과의 관계’로 쌓아 올린 허상에 불과하다.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토대 위에 있는 불안정한 ‘나’를 가장 소중히 여겨도 괜찮은 걸까. “그렇지만 저는 누가 봐도 저인데요” 하고 말하는 이에게 당신이 누구인지 되물으면 이름과 성별, 나이, 성격, 직업, 가족, 주소를 술술 읊는다. 하지만 이런 건 어디까지나 지금의 ‘나’를 이루는 속성일 뿐이다. 이런 속성을 모두 걷어내면 무엇이 남을까? --- p.18 |
세상이 빚어낸 ‘나’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삶의 괴로움 앞에서 애써 저항하기보다는 괴로움을 기꺼이 수용하며 그저 흘러가도록 놓아두기. 내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는 건 이런 삶의 지혜다. --- p.20 |
장인에게는 자기를 돋보이려 하거나 뽐내려는 마음이 없다. 자신이 인정받지 못해도 자신이 한 일이 인정받으면 그걸로 족하다. 그 이상의 만족도, 인정도 바라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좋게 평가받으면 자신이 인정받는 것과 다름없으니 자신에게 집착할 이유가 없다. 오로지 어떻게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어떻게 하면 만족스럽게 일할 수 있을지에 마음을 쏟는다. --- p.42 |
삶의 테마가 분명하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다는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볼지 전전긍긍하며 일일이 남의 안색을 살필 필요도 없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마땅한 일을 하며 살다 보면 알아주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해야겠다는 확신이 있고 그 이유를 남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면 충분하다. 욕심이 아니라 가치관에서 우러나오는 일이면 된다. 다만 능력은 완전하지 못하고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어디에 무게를 둘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손에 쥘 수는 없다. 결과를 기대하고 보상을 바라는 대신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마음먹자. 산다는 것은 그런 거다. --- p.43 |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선택하고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크나큰 착각이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다고 해서 발을 동동 구를 필요가 없다. --- p.50 |
어느 곳도 어떤 관계도 절대적이지 않다. 평생을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곳은 세상에 없다. 몸과 마음을 내려둘 자리가 필요하다면 새로운 곳을 찾거나 지금 있는 곳이 조금이라도 마음 편한 곳이 되도록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 --- p.54 |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참고 견뎌서 좋은 사람이 될 필요도, 몸을 던져 희생할 필요도 없다. 내가 제일 소중하다는 착각, 진짜 내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착각, 꿈을 이루며 사는 게 잘사는 거라는 착각은 그만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 다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또렷이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사는 것도 힘들지만은 않네’ ‘산다는 거 꽤 괜찮은 거네’ 싶은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 p.95 |
예상치 못한 일에 마음이 흔들리고, 선뜻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화가 나도 부드럽게 흔들리다 이내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균형감을 잃지 않고 평균대 위를 걷듯이 말이다. 내가 정한 길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야, 길 위에서 잠시 흔들린다 한들 문제 될 건 없다. 우리는 왜 감정에 번민할까. 세상 이치를 근본적으로 잘못 알고 있어서다. 감정이 얽힌 문제 중 열에 아홉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 p.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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