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는 필독도서라고 해서 명작들을 읽게 하고 독후감을 써오게 하는 과제를 많이 내주곤 했습니다. 그때는 오랜 명저들을 의무감으로 읽어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세상에 온갖 화려하고 빛나는 것들에 눈이 팔려 오랜 명저가 주는 깊은 사색에는 관심이 적은 게 사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규정해 놓은 화려하고 빛나는 것들이 그저 당연히 내가 취해야 하고 원하고 바라는 것이라 믿고 그 신념대로 눈에 보이는 물질을 추구하며 강한 집착과 욕심을 부리며 쉼 없이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면 살수록 게츠비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처럼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푸른빛은 더 멀어져만 갔습니다.
눈앞에 있지만 잡을 수 없는 신기루 처럼 말입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망상을 쫒고 있다는 것을요. 오십이 넘어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 많은 책을 읽고 공부하고 열심히 살아왔지만 인생의 방향을 잘 못 잡은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깨닫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려고 하니 말입니다.
이 책의 저자가 삶의 회환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저도 그랬습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그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인이 50이 되기전에 성공을 향해 쉬지 않고 발버둥 치며 살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이 있었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인생의 진실을 깨닫기도 전에 힘든 삶을 살다 간 지인이 너무나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에 성공에 목숨을 걸고 물질만능에 노예가 되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인생은 그런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들의 눈은 이미 멀어있기 때문에 진실의 문은 보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책을 많이 읽고 한편으론 고단한 삶을 살아봐야 아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7932012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박영규의 오십에 읽는 노자 탐구
노자를 만난 후 존재의 본질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유와 욕망, 생각을 비우면 비울수록 삶이 더 충만해진다는 역설을 노자에게서 배웠다. <도덕경>에 ‘거 피취차去彼取此’라는 구절이 있는데, 나는 채움이라는 저것을 버리고 비움이라는 이것을 취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인생 후반전이 편하려면 전반전에 짊어졌던 마음의 짐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자책하는 마음과 회한을 내려놓아야 자유로워진다. 하늘 나는 새가 배낭을 메지 않듯 먼 길 떠나는 여행자는 무거운 짐을 지지 말아야 한다. ‘한 발만 더’ 하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명과 섭리의 현실적 규범으로서 ‘지지知止’와 ‘신퇴身退’를 제시했다. 나이가 들수록 욕심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몸을 뒤로 물리는 게 지혜로운 처신이라는 가르침이다. 책은 ‘이제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지금까지 충분히 잘살았다’, ‘마음의 품을 넓혀 나를 찾으려면’, ‘복잡한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시간’,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법’ 등 5부에 걸쳐서 멈춤, 성찰, 용서, 비움, 조화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바람 부는 대로 물 흐르는 대로 사는 삶(순리) “도도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임금도 크다. 세상에는 네 가지 큰 게 있는데 왕도 그 가운데 하나다. 사람은 땅을 법으로 삼고 땅은 하늘을 법으로 삼고 하늘은 도를 법으로 삼고 도는 자연을 법으로 삼는다.” - <도덕경> 25장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그래서 노자는 ‘도(道)’가 자연을 법으로 삼는다고 했다. 순리대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자연을 통해 깨닫는다. 욕심을 내려놓고, 서두르지 않고, 분수와 자리에 맞게 하루하루를 여유롭고 너그럽게 살아가는 게 자연을 닮은 삶이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허허롭게 사는 게 순리대로 사는 삶이다.
아등바등 살아봐야 키 한 자도 늘릴 수 없는 게 우리 인생이다. 인생 후반전에 이르러 동네 근처 자연을 벗 삼아 살다 보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하는 선불교의 화두가 마음에 절로 스며든다. 오십부터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서행)
미하엘 엔데가 쓴 소설 <모모>에는 이발사 호지씨의 이야기가 나온다. 호지 씨는 마음씨 좋은 동네 이발사인데, 단골손님들을 상대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느긋하게 가위질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산다. 어느 날 ‘시간관리회사’ 영업사원들이 찾아와 호지 씨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를 들은 호지 씨는 가위질 속도를 높인다.
단골손님들과 대화할 시간도 없이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바쁘기만 하다. 바쁘게 가위질을 하면 할수록 시간에 더 쫓기는 것이다. 이렇게 호지씨처럼 시간에 쫓기면서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소설가 미하엘 엔데는 소설에 등장하는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느리게 가는 게 더 빠르게 가는 것이다.”
지난 일을 돌아보고 오늘 일을 샆핀다(반추)
“태고의 도를 가지고 오늘의 일을 살피면 태고의 시초를 알 수 있으니 이를 일러 도의 실마리라고 한다.” - <도덕경> 14장 책의 저자는 인생의 반환점을 훌쩍 지나서 나이 육십이다. 지난날을 바둑판 복기하듯 찬찬히 돌아보니 보람차고, 가슴 벅찼던 환희의 순간들보다 후회되고 아쉬웠으며 가슴을 아리게 하는 그런 장면들이 더 많이 떠올랐다.
그의 집 거실에는 에어컨이 한 대 놓여 있는데, 어지간해선 리모컨 보튼을 작동하지 않다 보니 한여름에도 먼지를 막기 위해 비닐커버를 뒤집어쓴 채 거실 모퉁이에 우두커니 서 있기 일쑤다. 이 대목에선 나와 닮은꼴임을 느끼게 해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비닐커버에는 프로스트가 쓴 시詩 ‘가지 않은 길’이 영문으로 적혀 있다고 한다. 살면서 만났던 그 많은 길 중에서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이 가득한 내용을 시는 담고 있다.
그렇다. 어제를 돌아본 후 오늘을 살피고 내일을 도모하기 위해 이렇게 반추하는 일이 바로 노자가 말하는 ‘도’의 실마리를 캐는 일이 아닐까 싶다. 도道는 곧 길이기 때문이다. 어제가 오늘을 이루고 오늘이 내일을 이룬다(연결)
“천하가 다 아름답다고 하는 건 이미 추한 것이다. 천하가 다 착하다고 하는 건 이미 착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유와 무는 서로를 생성시키며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이뤄준다. 길고 짧음은 서로를 비교하고 높고 낮음은 서로를 견준다. 앞과 뒤는 서로를 따른다.” - <도덕경> 2장
노자는 우주 만물을 하나로 연결된 통합체로 인식한다. 노자에게서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호의존적 존재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름다움은 추함으로 바뀔 수 있으며 그러한 변화는 역방향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 선善과 악惡도 마찬가지다. 고정된 게 아니라 가변적可變的이고 상호교환적이다.
오늘의 선이 내일의 악이 될 수 있고, 오늘의 악이 내일의 선이 될 수 있다. 모든 사물과 현상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유와 무, 난이難易, 장단, 고하, 전후 등은 꼬리를 물 듯 서로를 뒤따르며 질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유와 무는 서로를 생성시키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이루고, 길고 짧음은 서로를 비교하고, 높고 낮음은 서로를 견주고, 앞과 뒤는 서로를 따른다. 자연을 닮으면 다툴 일이 없다(평화)
“성인은 쌓아 놓지 않고 사람들을 위해 베풀지만 더욱더 많이 가지게 되고 사람들과 더불어 쓰지만 더욱더 많아진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할 뿐 해롭게 하지 않는다. 성인의 도는 일을 도모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 <도덕경> 81장
<도덕경>은 총 81개 장, 5천여 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로 시작해 ‘부쟁’으로 끝난다. 그래서 <도덕경>의 문장으로 판단할 때 노자의 사상은 ‘도위부쟁道爲不爭’, 즉 ‘도란 다투지 않는 것’이라는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도란 곧 평화라는 게 노자 사상의 핵심이다. 다투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을 닮는 것이다.
자연은 무위無爲하고 다투지 않는다. 가까운 산이나 식물원을 찾아 산책해 보라. 산책길에서 만나는 식물들은 서로 각자의 위치를 지키면서 남의 영역과 애써 다투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집착을 내려놓아라(방하放下)
“천하를 취하고자 하지만 내가 보건대 필경 성공하지 못한다. 천하는 신령한 그릇이니 함부로 취할 수가 없다. 하고자 하면 실패하고 잡고자 하면 잃는다.” - <도덕경> 29장
나이 들었다고 집 안에만 있지 말라. 걷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마치 관 속에 누워 있는 것처럼. 반면에 길을 걷는다는 건 생명의 확인이다. 걸음으로써 일상이 생겨나고 그것이 모여 삶을 완성시키므로 삶의 ‘도’는 걷기에서 비롯되는 셈이다. 길은 손에 쥘 수 없고 발아래 놓아야 한다. 길을 내려놓지 않으면 길을 걸을 수 없다.
길을 걷는 사람은 마음의 짐도 내려놓아야 한다. 마음속의 짐이 무거우면 발걸음은 천근만근이 되고 제대로 걸을 수 없다. 집착을 내려놓아야 올바른 도를 걸을 수 있다. 복잡한 마음을 홀가분하게(초연超然)
“그러므로 성인은 하루 종일 다닐지라도 짐수레를 떠나지 않는다. 화려한 경관이 있을지라도 초연함을 잃지 않는다. 만승지국萬乘之國의 군주가 어찌 자기 몸을 가볍게 놀릴 수 있겠는가.” - <도덕경> 26장
노자가 활동하던 때인 춘추시대는 혼란이 극에 달했다고 알려진다. 각 제후들은 한 뼘의 영토라도 더 늘리려고 밤낮없이 전쟁에 몰두했고, 귀하고도 화려한 전리품을 챙기는 일에 취하면서 살았다. 이 시절에 ‘완벽完璧’이라는 단어가 유래했다. 조趙나라엔 ‘화씨지벽’이란 옥구슬이 있었다. 밤이나 어두운 곳에선 스스로 빛을 발해서 수십 보를 환하게 비출 수 있었다.
이는 우연한 기회에 무현이란 인물이 얻어서 혜문왕에게 상납했고, 궁궐에 보관되었다. 진귀한 보물의 소문은 널리 퍼졌다. 소문을 들은 진晉나라 소왕이 구슬이 탐나서 진나라의 15개 성城을 줄 테니 맞교환하자고 제안하자, 난처한 혜문왕은 거절하자니 강대국의 보복이 두렵고 수용하자니 보물이 너무나도 아까워서 긴급 참모회의를 열게 됐다.
이때 신하 인상여가 자신이 직접 구슬을 갖고 진으로 가서 소왕과 담판을 짓겠다고 나섰다. 예상대로 욕심 많은 소왕은 구슬을 받아 구경하고선 15개 성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에 인상여는 약속이 이행될 닦이지 구슬을 보관하겠다고 돌려받은 후, 후환이 두려워 재빨리 조나라로 돌아갔던 것이다. 이렇게 안전하게 구슬을 조나라로 가지고 왔다는 이 고사에서 ‘완벽完璧)’이라는 단어가 유래했다.
인상여가 소왕에게 구슬에 흠이 있다며 다시 보여달라고 했을 때의 흠을 뜻하는 ‘하자瑕疵’도 이 고사에서 유래했다. 화씨지벽 고사가 말해주듯 완벽한 보물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도한 욕심을 갖게 한다. 욕심은 분쟁을 불러오고 다툼이 있는 곳에선 평화가 사라진다. 옥구슬은 인생 전반기에 누구나 탐했던 화려한 불꽃놀이나 벚꽃놀이, 달콤한 꿀이 묻은 권력이나 명예 같은 것이다. 완벽한 것보다 오히려 조금 모자란 게 낫다. 너무 강하면 부러질 수 있다(유연)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고 강해진다. 풀과 나무는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으면 말라비틀어진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그래서 군대가 강하면 이기지 못하고 나무가 강하면 꺾이고 만다.” - <도덕경> 76장
노년의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부러진다. 아니 폭삭 고꾸라진다. 생명의 기운은 사라지고 죽음이라는 그림자와 마주하게 될 수 있다. 인생이란 모두 그렇다. 결정적인 순간과 마지막 순간엔 혼자 있을 뿐이다. 비록 남의 도움을 받으며 살 순 있겠지만, 남이 결코 내가 될 수는 없다. 고독을 견디며 혼자만의 삶을 즐겨라.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기(단순)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스스로 으스대는 사람은 공이 오래가지 않는다. 도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일은 먹다 남은 밥이나 군더더기 행동으로 모두가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깨우친 사람은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 <도덕경> 24장
한때 유행했던 우문현답이 있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미 현답을 아는 사람도 많겠지만 이를 반복하자면 ‘냉장고 문을 연다 - 코끼리를 냉장고 속으로 집어넣는다 - 냉장고 문을 닫는다’는 해결책이 정답이다. 마찬가지다. 단순한 삶도 이와 같은 원리다. 복잡하고 번잡한 일상에 익숙해지다 보니 군더더기를 모두 덜어내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게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지만 군더더기 버리기를 해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단순한 삶에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그렇다. 삶에서 군더더기를 덜어내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더 집중하고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일의 능률도 더 높아진다.
노자는 말한다. ‘지지불태知止不殆 가이장구可以長久’ 이는 ‘멈출 줄 알아야 위태롭지 않고 오래간다.’는 뜻이다. 건강백세의 전반전을 쉬지 않고 앞만 보고 전력투구했다면 이제 남은 인생 후반전을 ‘느리게 천천히 살아가라.’는 가르침일 것이다.---독자리뷰
멈출 줄 알아야 위태롭지 않고 오래 간다
인생의 절반쯤, 인생 전반기를 지나 후반기를 시작하기 전의 케렌시아(투우사들이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쉬는 장소)를 찾아 헤매는 오십 대는 답답하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 봐도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하고 방황하기 쉽다. 어떻게 해야 할까. 노자는 ‘지지불태 가이장구(知止不殆 可以長久)’라고 했다. ‘멈출 줄 알아야 위태롭지 않고 오래간다’라는 말이다.
오십이 면 아직 멀었는데, 지금까지 달려온 것보다 더 달려야 할 것 같은데, 멈추라니 언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멈춤’의 속뜻은 다른 데 있다. 일찍이 혜민 스님도 말했듯,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소중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잠시 멈춰 쉬는 건 게으름이나 시간 낭비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위해 꼭 필요하거니와 가장 우아하게 시간을 버리는 일이다. 노자가 말하는 멈춤이란 위태롭지 않게 오래 멀리 가기 위한 준비의 일환이다.
오십에는 일단 멈춰 숨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채움이라는 저것을 버리고 비움이라는 이것을 취한다” _오십에 꼭 기억해야 할 노자의 말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 발맞추고자 쉼 없이 달려오다 보니 어느덧 인생 후반기를 목전에 둔 하프타임 나이 오십이다. 그동안 실적, 성과, 재물, 명예를 채우려고 아등바등 살았지만 공허와 결핍에 시달렸다. 오십에 이르러서도 다르지 않다. 여전히 공허하다. 노자는 “채움이라는 저것을 버리고 비움이라는 이것을 취한다”라고 말했다.
채움 속에 버림이 없고 비움 속에 취함이 없거늘, 이 역설은 뭔가 싶다. 그런데 돌아보면 채움만 취했던 지난날은 공허했다. 채우고 또 채웠는데 더 큰 허기를 느꼈다. 마음가짐을 바꿔 삶의 본질, 존재의 본질을 채움이 아닌 ‘비움’과 ‘적당’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비우고 나면 충만해질 일만 남았고, 충만의 기준을 적당한 만족으로 정할 수만 있다면 오십 이후의 삶이 오히려 풍요로워질 것이다.
물론 어지간한 의지와 결단, 용기가 없으면 해내기 어렵다. 그럴 때마다 노자의 『도덕경』을 삶의 지표로 삼아 『오십에 읽는 노자』를 머리맡에 두고 읽으면 소박하고 단순한 삶의 지혜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을 테다.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 홀가분해지는 시간 오십에는 멈춤과 비움의 때를 지나 ‘홀가분’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노자는 ‘불필요한 삶의 군더더기는 과감하게 덜어내라’라는 뜻에서 ‘기재도야 여식췌행(其在道也 餘食贅行)’이라고 했다.
인생 전반기에 천 갈래만 갈래로 뻗어 있던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면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며 편안하고 긍정적인 마음이 찾아올 것이다. 노자의 이야기는 오십에게 무거웠던 삶이 가벼워지는 지혜를 건넨다. 좀 더 소박하고 단순하게 덜 어내며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비우면, 가벼워지고 홀가분해진다. 덕분에 스스로에게 “그만하면 잘살았다, 그만하면 충분해”라며 만족하고, 내 편이 아니었던 내가 비로소 내 편이 된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는 To Do List 더 이상 타인만을 위해 나의 시간을 쓰고 싶지 않고, 남이 아니라 내가 볼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했으면 해서 인생의 전부와 다름없었던 술잔과 골프채를 내려놓았다는 저자. 그럼에도 오롯이 삶의 주인이 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는 오십에 담대한 고민으로 새로운 인생관을 찾고자 했는데, 와중에 접한 게 노자의 『도덕경』이다.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데 노자는 어떤 말로 도움을 줬을까. 다음을 보자. · 이젠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 잘살았다고 스스로를 잘 다독여라 · 마음의 품을 넓혀 나를 찾아야 한다 · 복잡한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라 ·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야 할 때다 충분히 따라 해보고 오십 이후의 삶을 바꾸는 데까지 도움이 될 만한 말들이다. 여전히 조급함이 앞서 서두르는 오십이 희망적일 수 있게 한다.
언제 읽어도 좋을 노자의 『도덕경』이지만, 오십에 읽는 『도덕경』이 특별한 이유다. ‘천하를 내 몸처럼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겐 가히 천하를 맡길 수 있다.’ _본문 중에서 오십에 꼭 기억했으면 하는 노자의 말과 오십 이후 삶의 버팀목이 될 『도덕경』의 지혜에 귀 기울이고 짚어 나가면, 인생의 절반 오십에 서서 지난날을 돌아보고 현재에 대입해 보며 다가올 인생 후반기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실감 나게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저 : 박영규
노자와 장자, 주역, 그리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인문학자. 서울대학교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나왔으며 중앙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학교 총장, 한서대학교 대우교수, 중부대학교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서울시 교육청과 서울경제신문 산하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광장人’을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장자, 경계와 융합에 대한 사유》, 《자존감 공부》,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세종의 원칙》, 《인문학을 부탁해》,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존재의 제자리 찾기》, 《관계의 비결》, 《퇴근길 인문학 수업》(공저), 《청소년 인문학 수업》(공저)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그래서 노자는 ‘도(道)’가 자연을 법으로 삼는다고 했다. 순리대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자연을 통해 깨닫는다. 욕심을 내려놓고, 서두르지 않고, 분수와 자리에 맞게 하루하루를 여유롭고 너그럽게 살아가는 게 자연을 닮은 삶이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허허롭게 사는 게 순리대로 사는 삶이다. ---p.30~31
미하엘 엔데가 쓴 소설 『모모』에는 이발사 호지 씨 이야기가 나온다. 호지 씨는 마음씨 좋은 동네 이발사인데 단골손님들을 상대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느긋하게 가위질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시간관리회사’ 영업사원들이 찾아와 호지씨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 말을 듣고 호지씨는 가위질 속도를 높인다.
단골손님들과 대화할 시간도 없이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그런데 이상한 게 시간을 절약하고자 바쁘게 가위질을 하면 할수록 호지씨는 시간에 더 쫓긴다. 호지 씨처럼 시간에 쫓기면서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미하엘 엔데는 소설 속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입을 빌려 말한다. “느리게 가는 게 더 빠르게 가는 것이다.” ---p.74~75
“태고의 도를 가지고 오늘의 일을 살피면 태고의 시초를 알 수 있으니 이를 일러 도의 실마리라고 한다.”_『도덕경』 14장 우리 집 거실에는 에어컨이 한 대 놓여 있다. 그런데 어지간해선 에어컨을 틀지 않다 보니 한여름에도 커버를 뒤집어쓴 채 우두커니 거실 모퉁이에 서 있기 일쑤다. 커버에는 프로스트가 쓴 시 「가지 않은 길」이 영문으로 적혀 있다. 시에는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이 가득하다. 어제를 돌아봐 오늘을 살피고 내일을 도모하는 작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노자가 말하는 ‘도’의 실마리를 캐는 일이라 할 수도 있겠다. 도는 곧 길이기 때문이다. ---p.88
노자는 우주 만물을 하나로 연결된 통합체로 인식한다. 노자에게서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호의존적 존재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름다움은 추함으로 바뀔 수 있으며 그러한 변화는 역방향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 선과 악도 마찬가지다. 고정된 게 아니라 가변적이고 상호교환적이다. 오늘의 선이 내일의 악이 될 수 있고, 오늘의 악이 내일의 선이 될 수 있다. ---p.107
아내와 나는 비교적 잘 지내는 편이다. 생각이나 취향에서 접점이 많은 편이라 관계가 크게 뒤틀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여느 부부들처럼 우리 부부도 가끔 다툰다. 그런데 다투는 원인과 다투고 난 후의 수습 과정, 그리고 결말은 언제나 같다. 다툼의 원인은 내 마음의 품이 넓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런 연유로 언제나 내 쪽에서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세월이 흘러도 이 공식은 깨지지 않는다. ---p.160
노자의 『도덕경』은 총 81개 장, 5천여 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로 시작해 ‘부쟁’으로 끝난다. 그래서 『도덕경』 텍스트를 기준으로 할 때 노자의 사상은 ‘도위부쟁(道爲不爭), 도란 다투지 않는 것’이라는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도란 곧 평화라는 게 노자 사상의 핵심이다. 다투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을 닮는 것이다. 자연은 무위하고 다투지 않는다. 식물원 산책길에서 보는 식물들 가운데 다른 식물들의 영역을 침범하고자 다투는 경우는 없다. ---p.189~190
“천하를 취하고자 하지만 내가 보건대 필경 성공하지 못한다. 천하는 신령한 그릇이니 함부로 취할 수가 없다. 하고자 하면 실패하고 잡고자 하면 잃는다.”_『도덕경』 29장 걷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관 속에 누워 있다는 건 더 이상 걸을 수 없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길을 걷는다는 건 생명의 확인이다. 걸음으로써 일상이 생겨나고 그것이 모여 삶을 완성시키므로 삶의 ‘도’는 걷기에서 비롯되는 셈이다.
길은 손에 쥘 수 없고 발아래 놓아야 한다. 길을 내려놓지 않으면 길을 걸을 수 없다. 길을 걷는 사람은 마음의 짐도 내려놓아야 한다. 마음속의 짐이 무거우면 발걸음은 천근만근이 되고 제대로 걸을 수 없다. 집착을 내려놓아야 올바른 도를 걸을 수 있다. ---p.216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구슬을 조나라로 가지고 왔다는 이 고사에서 ‘완벽(完璧)’이라는 단어가 유래했다. 인상여가 소왕에게 구슬에 흠이 있다며 다시 보여달라고 했을 때의 흠을 뜻하는 ‘하자(瑕疵)’도 이 고사에서 유래했다. 화씨지벽 고사가 말해주듯 완벽한 보물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도한 욕심을 갖게 한다. 욕심은 분쟁을 불러오고 다툼이 있는 곳에선 평화가 사라진다. 옥구슬은 인생 전반기 내가 탐했던 화려한 불꽃놀이나 벚꽃놀이, 달콤한 꿀이 묻은 권력이나 명예 같은 것이다. 완벽한 것보다 조금 모자란 게 낫다. ---p.242
장 그르니에는 알베르 카뮈의 스승이다. 책 『섬』에 덧붙인 카뮈의 서문은 스승을 위한 제자의 헌사인데, 그 글을 읽으며 무한대의 위안을 얻는다. 『섬』에서 노년의 삶을 잘 견디는 법을 배우고 세찬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지혜를 얻는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에서 고독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면, 『섬』에서는 고독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섬』을 통해 내가 고독이고 고독이 곧 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니 이제 고독을 견디고 이기는 차원을 넘어 고독을 즐기련다. ---p.291
복잡하고 번잡한 일상에 익숙해지다 보니 군더더기를 모두 덜어내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게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해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단순한 삶에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삶에서 군더더기를 덜어내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더 집중하고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일의 능률도 더 높아진다.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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