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엄청난 운의 결정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고 여러 시대를 거쳐왔으며 지구라는 별에서도 우리는 여기 이 시대에 태어났다는 건 우연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운과 나쁜 운을 가르는 기준이 시대마다 다르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본질은 생존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은 끝까지 생존하는 사람 이겠지요.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며 계속 이어지는 것이 모든 생명체의 본질 이니까요.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아니면 실제 우리 주변의 사례들을 보면 뛰어난 두뇌와 외모를 가지고 한 시대를 풍미해 오다가 결국은 그보다 못한 자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몰락하고 마지막에는 보잘것없는 외모와 똑똑하지도 않은 어쩌면 운이 아주 좋은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아 있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귀인이라고 합니다.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우리가 용납하기가 힘듭니다. 우리는 어떤 결과에 대해 어떤 원인이라도 찾아내려 합니다. 우리가 신을 믿는 이유도 그런 게 아닐까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해 신을 믿고 거기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좋은 운을 잡고 싶어 합니다. 좋은 운이라는 개념 또한 우리가 만든 허상이 아닐까요?
부처를 한번 보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는 사실 거부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부처님은 그 시절 왕자로 태어나 지금 기준으로 따지면 모든 것을 가진 운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버리고 다른 삶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도 운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좋은 운 나쁜 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만약 운이 나빠 죽었다고 칩시다. 죽으면 의식이 없는데 어떻게 운이 나쁜 게 되나요? 자신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단지 남이 그렇게 평가할 거라고 우리가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최고로 좋은 운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1193087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바버라 블래츨리의 기회의 심리학 탐구
기회를 잘 잡는 사람의 뇌는 무엇이 다른가? 심리학과 뇌과학으로 밝혀낸 운과 뇌의 상호 작용
AI는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두뇌만의 주의력 시스템 “운이 좋았어”, “운이 나빴어”, 우리는 모두 살면서 ‘운’을 말한다. 운은 ‘무작위’ 결과다. ‘예기치 않은’, ‘뜻밖의’ 일이다. 우연한 ‘기회’로 얻는 것이다. 운도 우연이고 기회도 우연이다.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무작위 우연에서 패턴이나 규칙을 찾으려는 시도는 확실히 ‘비합리적’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전적 의미일 뿐,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류는 운을 우연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 무작위 결과에서 패턴을 찾으려 했고, 도저히 못 찾겠으면 초자연적 존재라도 앞세워서 기어이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었다. 왜일까? 다름 아닌 ‘뇌’가 우연을 거부해서다. 우연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생존’에 유리해서다. 달리 말해 인간의 뇌는 무작위성에서 패턴을 찾게끔 진화해 왔다. 현재를 사는 우리 뇌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뇌에서 나온다. 나의 ‘뇌’가 곧 ‘나’다.
우리 삶에서 마주하는 무작위 사건을 뇌가 수용하고 처리한다. 따라서 뇌를 들여다봐야 운과 기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 바버라 블래츨리 교수는 학자, 그것도 비합리적 사고와는 거리가 먼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다. 그런데도 “운이 좋아질 수 있다”라고 단언한다. 실제로 뇌가 운과 기회를 학습한다는 사실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블래츨리 교수는 이 책에서 ‘무작위성’으로 대표되는 운과 기회의 언어, 문화, 신화, 미신, 주술 등을 흥미롭게 살핀 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과학’의 범주에 포함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우리 뇌의 메커니즘을 과학으로 설명하면서, 비합리적인 믿음이 예측 불가능한 세상과 씨름할 때 꼭 필요한 까닭을 힘주어 강조한다. 행운과 기회는 우리 ‘뇌’ 안에 있다 사실 행운과 기회는 곳곳에 널려 있거나 아무 데도 없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운’은 ‘우연’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길을 걷다 우연히 돈을 줍고, 어떤 이는 스마트폰을 꺼내다가 무심코 호주머니 속에 있던 돈까지 흘리고 만다.
전자는 ‘행운’이고 후자는 ‘불운’이다. 하지만 우리 대다수가 말하고 기대하는 운이나 기회는 이런 게 아닐 것이다. 무언가 더 크고 거창한, 삶이 바뀔 만한 그런 운과 기회다. 그런데 “운이 좋다” 또는 “운이 나쁘다”는 무엇으로 판단하는 걸까? 일테면 이 책은 ‘우드베일 대서양 횡단 조정 경주 대회’에 출전했다가 괴물 같은 파도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뻔한 두 여성의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바버라 블래츨리 교수는 그 상황에서 죽지 않고 살았으니 ‘행운’인지, 아니면 죽을 뻔했으니 ‘불운’인지 화두를 던진다.
비행기 추락 사고와 버스 전복 사고 등 일곱 번이나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한 남성은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남자’로 유명세를 치렀으나, 정작 자신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왜 나는 이토록 불행한가” 하면서 한탄했다. ‘운’은 실체가 아닌 개념일 뿐이며 운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판단은 우리 ‘뇌’가 한다. 똑같은 무작위 사건에 직면해 어떤 사람은 ‘운이 좋다’ 느끼고 어떤 이는 ‘운이 없다’ 여긴다.
카지노 룰렛 게임에서 아무리 연속으로 구슬이 검은색에 떨어졌어도 그것이 다음번에 붉은색으로 떨어질 확률을 높이지는 못한다. 동전을 열 번 던져 앞면이 열 번 나왔더라도 지독한 우연일 뿐 확률은 항상 ‘한 번’ 던질 때마다 ‘50 대 50’으로 고정돼 있다. ‘무작위’란 그런 것이다.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고 또 일어난다는 보장 없고, 나쁜 일이 반복됐다고 해서 또 나쁜 일이 일어나리라 여길 이유도 없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세상이 그런 식으로 작동할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잘못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일을 우리 ‘뇌’는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는 순간 ‘위기’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선사 시대 때부터 우리 뇌에는 ‘행위자 감지기(agency detector)’라 불리는 영역이 있다. 죽임을 당할 수 있는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물이다. 밀림을 탐험하다가 사자 발자국일 수 있는 움푹 들어간 땅을 보게 된 경우, 사자가 근처에 있다 여기고 조심하는 편이 생존 확률을 높인다.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도 손해 볼 것은 없다. 이 ‘행위자 감지기’가 퇴화한 인간종은 멸종했다. 아울러 포식자가 인류에게 더는 위협이 되지 않을 무렵부터 행위자 감지기는 다른 임무를 수행해 왔다. 다름 아닌 ‘기회(운) 감지기’다. 우리 ‘뇌’의 ‘주의력’ 회로는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아일랜드 속담에 “행운은 가느다란 물줄기에서 오고, 불행은 거대한 물결로 들이닥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행운은 잡기 어렵고 불운은 조금만 방심해도 노도처럼 밀려올 수 있다는 경고일 것이다.
그런데 무작위로 벌어지는 예측할 수 없고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거나 피할 수 있을까? 블래츨리 교수는 삶에서 마주한 우연을 주의 깊게 살핀 경험이 누적될수록 우리 ‘뇌’의 ‘주의력 회로‘, 즉 ’ 기회 감지기’가 민감해지며, 반대로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고 설명한다. 주로 우리가 ‘다음에 할 일’을 판단하고 실행하는 대뇌 전두엽(전전두엽)의 주의력 회로는 과거에 이용했던 정보가 ‘기억 은행’에 보관돼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거나 행동을 결정할 때 해당 정보를 인출한다.
이때 우리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정보에 의존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직감’이다. 직감은 사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과거의 ‘지식(정보)’이다. 무의식에 쌓인 이 정보는 우리가 무언가에 주의를 기울일 때 주의력 회로의 신경 세포를 통해 발화한다. 그렇지만 쓸모없다고 인지한 경험, 다시 말해 ‘운이 없었다’, ‘재수가 없었다’고 부정적으로 인식한 경험은 무의식의 기억 은행에 보관되지 않는다.
주의력 회로가 ‘운이 좋았다’, ‘좋은 기회였다’고 인지한 경험만 인출 가능한 지식으로 영구 보관된다. 블래츨리 교수에 따르면 ‘운이 좋은’ 사람들은 ‘운이 나쁜’ 사람들보다 사물에 주의를 기울이는 성향이 강하다. 남들 눈에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무언가를 모호하고 흐릿하지만 재빠르게 느낀다. 그리고 그 느낌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그래서 자신들의 직감에 따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거나 서둘러 벗어난다.
‘주의력 회로’가 발달한 덕분이다. 이 책은 수많은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의 다양한 실험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데, 우리 뇌의 갖가지 영역을 지칭하는 몇몇 용어에 주눅 들지만 않으면 ‘기회를 잡는’ 강력한 심리적·신체적 동기를 자신에게 과학적으로 부여할 수 있다. 대뇌 ‘전두엽’을 단련해 ‘기회’를 끌어당긴다 ‘주의력 회로’는 ‘실행 기능’과 직결된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에서 설명하지만, 대뇌 전두엽은 우리의 오감 체계를 통해 접수한 정보를 검토해 ‘좋은’ 결과를 내는 쪽으로 판단하고 실행한다.
결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누적되면 이를 활용해 다음번에도 유사한 결과가 나오도록 행동을 유도한다. 이 메커니즘 또한 본문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요컨대 전두엽의 여러 부위가 뉴런의 상호 작용 속에서 해당 결정의 상대적 가치를 판단하고, 행동의 결과를 추적하고, 상황을 지배한 규칙을 기억하고, 더는 유효하지 않은 규칙에서 새롭고 더 나은 규칙으로 전환하고, 나아가 우리의 감각 체계에서 생성한 정보에 대한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까지 수행한다.
이처럼 주변 사물이 무엇인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신속히 판단해 기회를 잡는 우리 뇌의 능력을 단련하려면 ‘운이 없다’는 부정적 생각부터 제거해야 한다. 그 생각이 ‘주의력 회로’의 퇴화를 초래하는 가장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실험 사례를 보면 스스로 운이 없다고 여긴 사람들 대부분은 실제로 뇌의 ‘주의력 회로’와 ‘실행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학 기술 발전에 힘입어 첨단 뇌파 측정 장비를 모두 동원해 진행한 실험 결과들이다. 우리 각자는 서로 사는 환경이 다르고, 기대하는 것과 추구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과 피하고 싶은 것들이 저마다 다르기에, 살면서 겪게 되는 우연을 대하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지만, 뇌의 메커니즘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무작위적이고 일관성 없는 세상에서 패턴과 규칙을 찾도록 설계된 뇌는 동일하다는 얘기다.
우리의 생각은 그 자체로 에너지를 방출하는 데다, ‘거울 뉴런(mirror neuron)’과 같은 교감 신경 세포가 존재하기에 서로에게 깊고 큰 영향을 미친다. 블래츨리 교수는 목표를 달성해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가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하는 방식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과학으로 설명하고자, 진실임을 역설하고자 자신이 가진 모든 설명 역량을 이 책에 쏟아붓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를 힘겹게 성취한 기억을 갖고 있다. 이 경험은 우리 뇌에 기대로서 고스란히 각인된다.
어렵게 경험해서 얻는 기대는 그 수준이 높다. 어떤 사람은 똑같은 기회를 접하고도 기대치를 낮게 잡고 어떤 사람은 높게 잡는다. 각자 경험의 정도가 달라서다. 그래도 좀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관련 없는 것은 무시해 버리고, 부적절한 반응은 억제함으로써 우리 뇌의 의사결정 체계에 더 양질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기대 수준을 높아지면 운과 기회를 끌어당길 수 있다. 블래츨리 교수는 우리 뇌는 플라스틱 같아서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절대로 바뀌지 않고 아무것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는 많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우연을 행운으로 바꾸는 과학’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제5장까지 마치 드라마의 복선처럼 ‘운’에 관한 흥미롭고 놀라운 일화를 살피는데, 이후 전부 ‘과학적 사실’과 연결된다. ‘운’과 ‘기회’에 관한 인문학적 통찰과 더불어 자기 계발의 과학적 동기까지 자극받을 수 있는 유익한 책이다.
저 : 바버라 블래츨리 (Barbara Blatchley)
심리학자(실험심리학·생리심리학·신경과학). 인디애나대학교(Indiana University) 심리학부를 졸업하고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University of South Carolina)에서 실험심리학 및 신경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위스콘신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 신경생리학 박사 후 연구 펠로우십을 거친 뒤 아그네스스캇칼리지(Agnes Scott College) 심리학·신경과학 교수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감각 및 지각이 뇌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주된 연구 분야로 삼아 인간 뇌의 발전 가능한 추가 영역을 탐구하고 있다. 2018년 통계학 입문서 『맥락별 통계(Statistics in Context)』를 썼는데, 우연한 기회에 통계나 확률과 전혀 무관한 무작위 사건인 ‘운’이 어떻게 인류 역사를 꿰뚫고 오늘날까지 인간 삶의 결정적 변수로 인식 돼왔는지 호기심이 생겼고, 이를 광범위하게 파헤쳐 마침내 과학적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이 책 『기회의 심리학』이 그 결과물이며, 여기에서 바버라 블래츨리 교수는 그동안 ‘끌어당김’, ‘마음 챙김’, ‘시크릿’ 등 자기 계발 개념 정도로 부유하던 ‘긍정심리학’ 원리를 ‘신경과학(뇌과학)’과 일치시키며 과학적 사실임을 공고히 한다. 요컨대 운이 좋아지고 기회를 잡는 방법을 ‘뇌’가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 : 권춘오
㈜네오넷코리아 대표. 동국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국장 및 「동아비즈니스리뷰」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으며, 「매일경제신문」 MK지식클럽을 운영했다. 옮긴 책으로 『세계사를 바꾼 49가지 실수』『공부하는 유대인』『역사를 바꾼 100가지 실수』『실험경제학』『세스 고딘 보고서』『타고난 승리자들』『의사결정 불변의 법칙』『새로운 시장의 리더』『유능한 관리자의 비밀 노트』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운’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첫째는 “개인의 이익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사건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다. 둘째는 “행복, 성공, 번영, 이익 등을 노력이나 의지의 결과가 아닌 우연한 기회로 얻는 것”이다. 첫 번째 정의에서 ‘우연’은 그야말로 ‘예기치 않은’, ‘뜻밖의’ 일을 말한다. 따라서 ‘우연한 운’이라는 표현은 중복이다. ‘운’은 이미 그 정의 속에 ‘우연’을 포함한다. 두 번째 정의는 ‘운’을 ‘기회’라는 개념으로 확장하고 있다. ‘운’은 우리의 통제 밖에 있으며,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가 그것을 얻을 자격이 있는지와 연결되지 않는다. 행운의 사건들은 무작위적이다. 우리가 그것을 위해 준비했거나, 훈련했거나, 우리에게 일어나기를 바랐건 간에 상관없이 ‘기회’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무작위적인 사건들을 생각할 때 우리 대부분은 문제에 직면한다. --- pp.23-24 |
「운과 무작위성」 중에서 많은 사람이 운을 눈 깜짝할 사이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우주의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믿는다. 한편으로 또 많은 사람이 에밀리 디킨슨의 말에 공감한다. 우리가 운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힘들게 일하고 애써서 얻은 결과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붙이면 그 사물에 힘을 부여하는 셈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결과를 놓고 우연이라고 믿고 싶지 않을 때 그 무작위적인 기회에 부여한 이름이 운이라고 말한다. 똑같은 무작위 결과를 누구는 ‘우연’, 누구는 ‘운’, 누구는 ‘기회’라고 여긴다. 이렇게 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운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 같다. --- p.37 |
「행운의 네 가지 유형」 중에서 다른 행운과 운명의 여신들처럼 본래 티케와 노르티아 그리고 포르투나도 갖가지 음식과 아이들을 선사해주는 풍요와 다산의 여신이었다. 출산, 운명, 죽음 사이의 연결고리는 많은 종교에 통합됐다. 넓고 크게 보면 결국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는 점에서 똑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우리가 그 필연성에 어떻게든 균열을 내서 운명을 바꾸는 데 힘을 쏟는 까닭일 수 있다. 종교, 문화, 사회적 계급, 살면서 모아놓은 재산과 상관없이 우리의 끝이 ‘죽음’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어찌 보면 감사하게도 결코 예상할 수 없다.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수없이 그래왔던 것처럼. --- pp.76-77 |
「그리스와 로마의 운」 중에서 옳든 그르든, 좋든 나쁘든, 살면서 우리는 일어나고 겪게 되는 모든 일을 귀인한다. 귀인하지 않는 우리 뇌와 우리 마음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귀인 이론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모든 일의 결과에 그 원인이 있다는 생각만큼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진 관념”은 없으며, “원인이 없다는 관념은 너무도 낯설기에, 밝혀진 원인이 없으면 ‘운’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라도 찾으려고 한다. 우리 뇌는 아무런 이유 없이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운’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 --- p.107 |
「운을 느끼는 이유」 중에서 두 학생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정류장 지붕 끝에 매달려 있던 크고 뾰족한 고드름이 갑자기 떨어졌다. 그러자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을 쳐다보며 “야, 너 운 좋았어!”라고 외쳤다. 이 말은 누가 했을까? 고드름에서 가까운 학생일까 먼 학생일까? 이번에는 아예 실험에 참가한 학생 100%가 고드름에서 멀리 서 있던 학생이 한 말이라고 응답했다. 고드름 가까이에 있다가 맞을 뻔한 학생이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운은 ‘밀접성’ 측면에서 사건에 얼마나 가까운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운은 ‘방향성’에 따른 반사실적 사고와도 관련이 있다. 실제 일어난 일보다 더 나쁜 상황을 떠올리는 ‘하향식’ 반사실적 사고를 할 때 우리는 행운을 경험했다고 느낀다. 발생할 수도 있었던 사건이 부정적일수록 ‘행운의 정도’도 커진다. ‘휴, 천만다행이지 뭐야. 운이 좋았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고.’ --- pp.123-124 |
「운과 반사실적 사고」 중에서 저주는 불운과 관련이 있지만, 저주를 풀거나 막는 방법도 있다. 운의 힘을 끌어당기는 가장 흔한 방법은 ‘부적(符籍, charm)’을 소지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행운의 부적, 행운의 옷, 행운의 액세서리 등을 갖고 있다. 행운을 부르고 불운을 멀리하기 위해서다. 나도 고백하기 부끄러우나 ‘행운의 신발’ 한 켤레를 갖고 있다. 물론 사람들이 이런 ‘부적’의 힘을 정말로 믿어서, 우주의 무작위 사건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이성적으로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감정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나도 무언가 약간의 행운을 바랄 때 내 ‘행운의 신발’을 신는다. --- p.149 |
「행운의 부적」 중에서 다른 연구에서 라이자 데이와 동료 심리학자들은 스스로 운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의 뇌를 분석한 결과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에 장애가 있음을 확인했다. ‘실행 기능’이란 전두엽이 관장하는 인지 능력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고 검토하거나 성취하려는 목표에 주의를 기울이는 뇌의 기능을 총칭하는 말이다. 집중력, 인지 지속성, 인지 유연성, 과제 전환, 반응 억제, 반응 유지, 조직화, 결정, 문제 해결, 추리 등이 모두 실행 기능에 포함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복잡한 상황에 효과적으로 적응하고 집중력을 적절히 분배해 주어진 과제를 실행하는 능력이다. 자신이 불운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실행 기능 장애를 겪고 있었다. 운이 좋다고 믿는 사람들에게서는 실행 기능 손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 pp.173-174 |
「믿음이 주는 이익」 중에서 제4종 행운은 운의 종류에서 개인차가 가장 많이 나는 운이다. 달리 말해 삶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운이다. 이 운은 ‘주의력’을 이용해 ‘딱 알맞은(just right)’ 결과를 찾는 방법으로 연결된다. 제4종 행운은 철저히 개인적인 운이기에 어떤 사람은 이 운으로 기회를 잡고 어떤 사람은 이 운과 마주해도 기회를 놓쳐버린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운이 좋지 않은 사람들보다 자신만의 재능과 능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와 장소를 훨씬 잘 찾는다. 운이 좋은 것은 단순히 운이 좋은 게 아니라 주의를 한곳에 더 잘 집중시키는 능력으로 귀결될 수 있다. 실제로 운이 좋아지는 방법은 주의력을 향상하는 기술인 경우가 많다. --- pp.203-204 「운과 전두엽」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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